터널 효과와 소득과 분배
터널 안에 2차선 도로가 있다. 도로 안이 차로 꽉 막혀 운전자들이 답답함을 느끼는 중 한쪽 차로에서만 차들이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 모습을 바라보며 나머지 한쪽 차선의 운전자들도 희망을 갖는다. '내 차가 있는 차선도 곧 앞으로 움직이겠지. 그러나 옆 차선의 차들이 끝없이 전진하며 터널을 빠져나가도 이쪽 차선은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위 상황은 경제학자 앨버트 허쉬만 Albert O. Hirschman이 개발도상국의 경제성장과 분배의 문제를 터널에 비유해 제시한 이야기다. 개발도상국의 정부는 빠른 속도로 국가의 경제성장을 이루고 싶어 한다. 정부는 상류층과 대기업에 먼저 혜택을 주면서 분배문제는 뒤로 미룬다. 한쪽 차선의 차들만 빠르게 터널을 벗어나는 현상과 비슷한 상황이다. 멈춰 있는 차들(서민층, 중소기업 등)은 옆 차선의 차들이 터널을 벗어나는 것을 보고 자신도 곧 터널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좌절과 절망감을 느낀다. 결국 이들은 교통법규를 무시하거나 경찰의 말을 듣지 않고 무리한 끼어들기를 시도해 본다. 여기저기 접촉사고가 이어지면서 터널 안은 아수라장이 되고, 결국 모두가 터널을 빠져나가기 어려운 상황이 온다는 것이 이야기의 결론이다. 성장의 혜택을 받지 못한 계층은 정부에 불만을 터트리거나 불법 행위를 벌인다. 이 때문에 계층 간 갈등이 커지고 사회적 혼란이 심각해져 오히려 경제가 불안정해지고 만다.
허쉬만은 경제성장과 분배의 문제를 터널 효과로 설명하였다.
앨버트 허쉬만은 이처럼 분배를 무시한 채 특정 계층에게 혜택을 몰아주면서 경제성장만 추구한다면 경제성장 자체가 늦어질 수 있음을 이야기했다. 그의 이러한 이론을 '터널 효과라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정부가 정책을 결정할 때마다 '성장이 먼저냐, 분배가 먼저냐'의 문제로 사람들의 의견이 부딪힌다. 그러나 소득 불평등이 나아지지 않으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이들의 불만이 터져 나와 사회적 경제적 불안으로 이어진다. 빈부격차가 심각한 브라질에서 소매치기와 강도가 일상화되어 있는 게 그 예다. 심각한 빈부격차는 사회의 안정적인 발전도 깨뜨리고 결과적으로 경제성장에도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제를 둘러싼 논란
1970년 11월 13일, 동대문에 위치한 평화시장 한 청년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몸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붙였다. 그날 숨을 거둔 청년의 이름은 전태일, 당시 평화시장의 의류공장에서 일하던 재단사였으며, 열악한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 노동운동을 하던 인물이기도 했다. 전태일은 17세에 처음 한 회사에 미싱 보조로 취직했는데, 그때 받았던 일당이 50원이었다. 당시 차 한잔값 정도에 해당하는 돈으로, 하숙비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모자라는 돈은 구두닦이를 하거나 껌이나 휴지를 팔아 보충해야 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최저임금제도가 존재하지 않았다. 생계유지가 어려운 수준의 임금을 받아도 근로자들은 별다른 항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였다.
1986년이 되어서야 저임금 근로자의 최소한의 생활 수준을 보장하기 위해 최저임금법이 만들어진다. 1988년 처음 시행될 때 시간당 462 원이었던 최저임금은 2021년 8.720원까지 상승했다. 그러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최저임금제도에 대한 찬반 논란이 있다. 찬성과 반대의 근거는 각각 무엇일까.
찬성의 입장에서는 최저임금제의 실시로 근로자의 생활이 안정된 고소득 재분배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이뿐만 아니라 최저임금을 받는 계층의 소득이 늘어나게 되면 생필품 외에도 다른 것을 소비할 여유가 생긴다. 소비가 늘어나니 기업의 생산이 활발해져 기업에도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다.
반면 반대의 입장에서는 최저임금제가 오히려 전체 일자리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는 전체 취업자의 24%가 치킨집이나 피자집, 편의점 등 자영업을 하는데, 최저임금의 수준을 높이면 파트타이머를 고용해 운영하는 이들에게 큰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처럼 운영이 넉넉지 않은 곳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 최저임금제로 부담이 늘어난 기업은 고용을 줄이게 되고 그로 인해 실업자가 된 이들이 소비를 줄이면서 전체 경제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쪽 이야기가 옳은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나뉜다. 그러나 저임금 근로자나 영세한 자영업자 등에게 사회 전체의 소득이 제대로 분배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최저임금제를 바라볼 때에는 우리 사회의 경제 성장뿐 아니라 소득 재분배의 문제까지 폭넓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기본소득제 도입 찬반 논란
미국 알래스카주 사람들은 매년 10월을 기다린다. 10월마다 주 정부에서 모든 거주민에게 한 명당 100~200만 원의 돈을 나누어 주기 때문이다. 이 무렵이 되면 쇼핑몰이 붐비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알래스카 영구기금'이라고 불리는 제도 덕분으로 이 돈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알래스카는 석유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석유를 통해 얻은 수익으로 기금을 만들어 1년에 한 번씩 거주민 전체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영구기금제도다. 이 제도는 1974년에 시작되었다. 당시 알래스카 주지사였던 제이 해먼드 Jay Hammond는 '석유는 알래스카 주민 모두의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제도를 추진했다고 한다.
알래스카의 영구기금제도는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는 기본소득제를 떠올리게 한다. 기본소득은 재산이나 소득, 직업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일정한 현금을 규칙적인 간격으로 나누어 주는 제도를 말한다. 기본소득이 화제가 되고 있는 이유는 4차 산업혁명 때문이다. 미래 인공지능과 로봇이 사람의 일자리를 대신하게 되면 인간은 생계를 유지할 일자리와 소득을 갖지 못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국가가 기본소득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도 알래스카처럼 기본소득제를 도입할 수 있을까? 찬성과 반대 여론이 팽팽하게 부딪히는 중이다. 찬성의 입장에서는 취약계층을 추려 도와주는 지금까지의 복지제도보다 기본소득이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한다. 취약계층을 추리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어 보다 의욕적으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반면 반대의 입장에서는 세금을 거두어 만든 나랏돈이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국민에게 매달 기본소득을 30만 원씩만 나누어 주어도 한 해에 186조가 들어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 돈은 우리나라 보건·복지·고용 예산을 다 합친 금액과 비슷하다. 또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다 보니 정작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을 돕지 못할 수도 있다. 더욱이 사람들이 나태해지고 근로 의욕이 떨어져서 경제성장에 방해가 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아직 국가 차원에서 기본소득을 나누어 주는 나라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될수록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전 세계 곳곳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전 국민이 공짜월급을 받는 세상이 올 것인지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터널 효과와 소득과 분배 (0) | 2023.08.02 |
---|---|
상식박스 - 면역빚, 촌캉스, 원데이클레스 (0) | 2023.07.30 |
밴드왜건 효과, 스노브 효과 (0) | 2023.07.23 |
경제학자 애덤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1) | 2023.07.22 |
전월세대출 용어 모음 (3) | 2023.07.19 |
댓글